가스라이팅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심리적 조작이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사회 구조에 따라 그 양상과 대응 방식, 회복 방법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은 정서 중심의 집단문화와 개인주의 중심의 문화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본 글에서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가스라이팅 사례를 문화적 맥락 속에서 비교하고, 각각의 대응법과 치료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문화적 배경이 만든 차이 (문화)
가스라이팅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형태와 인식, 수용 방식은 사회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에 기반한 집단주의, 연장자 중심의 위계 문화, 정서 중심의 인간관계를 중요시해왔습니다. 반면, 미국은 개인주의, 자기표현의 자유, 명확한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가스라이팅이 드러나는 방식과 지속되는 원인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에서는 연인, 가족, 직장 등 가까운 관계에서의 감정 통제를 ‘배려’, ‘충고’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가스라이팅을 명확히 인식하거나 문제 삼는 일이 드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우린 다 널 위해서야”라고 하면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일이 흔하며, 자녀는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비교적 명확한 ‘개인 경계 설정’이 이루어지며,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이나 반복되는 모욕, 왜곡을 ‘가스라이팅’으로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내 교육과 사회문화는 감정 표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갈등 상황을 ‘의논하고 해결하는 대상’으로 여깁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은밀하고 장기적인 가스라이팅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미국에서는 빠르게 감지되고 끊어지는 양상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대응법과 사회적 인식의 차이 (대응법)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정서적 폭력'에 대한 제도적 대응은 미비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문제를 명확히 설명하거나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민감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의 반복적인 무시나 조롱을 경험한 사람이 이를 신고하더라도, “그건 괴롭힘이 아니라 업무 지시일 뿐”이라는 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또 가족 간에는 감정적 조작을 폭력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은 가스라이팅을 포함한 정서적 학대를 명확히 '폭력의 한 형태'로 인식합니다. 특히 직장 내에서는 ‘harassment(괴롭힘)’와 관련된 내부 규정이 잘 갖춰져 있고,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HR(인사팀) 또는 외부 조사기관을 통한 대응 체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작동됩니다. 학교에서도 ‘감정적 괴롭힘’은 따돌림(bullying)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으며, 피해자 보호 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법률적으로도 미국은 정서적 학대나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판례와 보호 조항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미국은 제도적으로 빠른 개입과 외부의 조력 구조가 잘 마련되어 있고, 한국은 아직 문화적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심리치료 및 회복 방식의 차이 (치료법)
가스라이팅의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깊고 오래 지속되는 심리적 상처를 남깁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 체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이 부분에서도 구조적, 문화적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의 심리치료 시스템은 비교적 정교하고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는 질병이 아닌 ‘자기 성장의 일환’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보험과 지역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CBT(인지행동치료), EMDR(외상처리 요법) 등 다양한 트라우마 전문 치료 기법이 정착되어 있고, 개인상담과 집단치유 프로그램이 광범위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까지 정신과 치료나 심리상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거리감이 큽니다. “미쳤다는 거야?”, “그 정도는 참으면 돼”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피해자 스스로 치료를 받는 것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사설 상담센터의 비용 부담도 크기 때문에, 일부 공공기관이나 비영리단체의 무료 상담 외에는 접근이 제한적인 편입니다. 2024년 현재, 한국에서도 ‘가스라이팅 피해 회복’ 관련 프로그램이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에서 상담을 지원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피해자 개인의 자발적 노력에 의존하는 구조가 크기 때문에, 심리적 회복을 위한 인식 개선과 국가적 지원 확대가 필요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문화, 제도, 치료 접근 방식에서 가스라이팅에 대한 대응이 확연히 다릅니다. 한국은 아직 정서적 조작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부족한 반면, 미국은 예방 교육과 제도적 대응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가스라이팅을 더 이상 사적인 갈등이 아닌 ‘정신 건강의 문제’로 인식하고, 예방과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