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국가들은 공통의 가치인 인권과 형벌의 비례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살인죄에 대한 법적 접근이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주요 국가의 살인죄 관련 법률을 비교 분석하고, 형량, 위법성, 책임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유럽형 형사법 체계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국제 형법 또는 유럽법을 공부하거나, 다양한 법률 시스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형량 기준: 무기징역의 의미와 사형제 폐지
유럽연합 대부분의 국가는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으며, 형벌 체계는 무기징역 또는 장기 유기징역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특히 유럽 인권협약(ECHR)에 가입한 국가는 사형 폐지가 사실상 의무화되어 있어, 살인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독일에서는 형법 제211조에 따라 고의적 살인(Mord)에 대해 무기징역(Lebenslange Freiheitsstrafe)이 원칙입니다. 다만, 판례상 보통 15년 복역 후 가석방 심사가 가능하며,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프랑스는 1981년 사형을 폐지하고, 3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무기징역을 기본으로 하되, 가중사유가 있는 경우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범행의 잔혹성, 피해자의 연령, 계획성 등이 중요한 양형 요소로 작용합니다. 영국은 사형이 폐지된 이후에도 가장 강력한 형벌로 ‘Life Imprisonment(종신형)’을 두고 있으며, 최소 복역기간(Minimum term)을 법원이 결정합니다. 특히 계획적 살인 또는 아동 대상 살인에는 최소 30년 이상 복역 후 가석방 심사 자격이 부여됩니다. 결론적으로, 유럽은 전체적으로 사형을 배제하고 인간 존엄성의 관점에서 형량을 설정하며, 사회복귀 가능성을 고려한 점진적 형벌 운영이 특징입니다.
위법성 판단과 정당방위 기준
유럽 형법 체계에서는 위법성 조각 사유 중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특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각국은 공통적으로 비례성의 원칙, 보충성, 상당성 등을 기준으로 삼으며, 특히 피해 회피 가능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독일 형법 제32조는 정당방위(Notwehr)를 명시하고 있으며, 현재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어하는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규정합니다. 다만, “방어의 필요성”이 지나치면 과잉방위(§33)로 간주되어 일부 처벌이 가능해집니다. 프랑스 형법에서도 유사한 조항이 존재하며, 특히 ‘정신적 충격’ 하의 대응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피해자가 지속적인 가정폭력이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던 경우, 위법성 판단에서 이를 참작하여 감형하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영국법은 Common Law에 따라 정당방위 요건을 판례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2008년 R v. Martin 사건에서는 가택 침입자를 사살한 남성에게 정당방위가 부정되었는데, 이는 방어 행위가 ‘불필요하고 과도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영국에서는 가택방어법(Householder Defence)을 도입해 이를 완화하였고, 방어의 합리성과 순간적 판단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유럽 국가들은 위법성 조각 여부 판단에 있어 합리적 방어인지, 침해의 즉시성, 과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피해자의 상황도 폭넓게 참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책임능력 판단: 심신미약과 형사 미성년 기준
살인죄에 대한 책임 여부 판단에서 유럽 국가들은 정신질환자와 미성년자의 형사책임을 세밀하게 구분합니다.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에 대한 인정 여부는 해당 행위자의 정신 상태, 치료 이력, 범행 전후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독일 형법 제20조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행위를 한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규정하며, 심신미약(§21)인 경우 형의 감경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정신과적 감정을 매우 엄격하게 요구하며, ‘고의적 약물 복용’ 등은 감경 사유에서 제외하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정신병력을 인정받더라도, 범행의 계획성이나 판단능력이 일부라도 존재하면 책임을 묻습니다. 특히 2022년 파리에서 발생한 ‘환청에 의한 살인사건’에서 법원은 심신미약을 인정했지만 무죄가 아닌 감형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영국은 책임감경 사유로 ‘Diminished Responsibility(책임능력 저하)’를 인정하며, 이는 살인죄를 과실치사나 감경된 범죄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단, 이는 반드시 전문가의 소견과 증거에 기반해야 하며, 판례 기준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됩니다. 또한 형사 미성년 기준은 독일과 프랑스는 14세, 영국은 10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14세와 비교했을 때 영국이 더 엄격한 책임 연령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살인죄 관련 법률은 형량의 인도적 접근, 위법성 판단의 합리성, 책임능력 인정의 세밀함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입니다. 사형을 배제하고, 방어의 정당성과 행위자의 심리상태를 폭넓게 고려하는 점은 유럽법의 인권 중심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국제법, 형법 또는 comparative law(비교법)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은 이 같은 유럽의 사례를 통해 형사법의 다양성과 진화를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